남극문어가 추위를 견딜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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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몹시 추운 바다 속에 사는 문어는 발에 장갑이나 방한화를 착용하지 않고서도 혹독한 추위를 견뎌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푸에르토리코 의과학대학의 조슈아 로젠탈 박사(분자신경생리학)가 이끄는 연구진이 Science 최근호에 기고한 논문에 의하면, 이 문어는 RNA 편집(RNA editing)이라는 트릭을 사용하여,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신경계 단백질을 낮은 수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조절한다고 한다. 이 논문은 "특정 유전자를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RNA 편집을 통해 환경적응이 가능하다"는 사례를 제시한 최초의 논문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경세포가 발화(firing)할 때는 신경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 채널이 열리고 닫히면서 다양한 이온들이 드나들 수 있다. 그러다가 세포막 안팎의 전하(electrical charge)가 정상으로 회복되면, 칼륨이온을 내보내는 이온채널이 닫히게 된다. 하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칼륨채널이 닫히는 속도가 늦어져 신경세포가 다시 발화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연구진은 "추운 곳에 사는 생물들은 칼륨채널을 변화시켜 추운 곳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진화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우리는 당초에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 변화를 찾으려고 생각했다. 즉 우리는 추운 곳에서 사는 생물들은 칼륨채널을 코딩하는 유전자가 진화하여 저온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독특한 칼륨채널을 만들어내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하였다"고 연구진은 술회했다.
연구진은 추운 남극바다에 사는 문어와 푸에르토리코 산호초(수온: 25°~35°C)에 서식하는 문어의 유전자를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두 문어의 칼륨채널은 DNA 염기서열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다음으로, 두 문어의 칼륨채널 유전자를 추출하여 개구리 알에 이식한 다음, (개구리알의) 세포막에 칼륨채널을 발현시켜 전기활성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개구리알에 발현된 두 문어의 칼륨채널은 완벽하게 동일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혼란에 빠졌다. "남극에 사는 문어의 칼륨채널은 푸에르토리코의 바다에 사는 문어의 캘륨채널보다 60배나 느리게 닫힌다. 연구실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2개의 칼륨채널이 양극단의 환경에서는 각각 다르게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극 문어의 신경세포를 정상적으로 발화시키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RNA 편집을 통해 단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세포는 유전자에 코딩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DNA로부터 RNA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전사(transcription)라고 한다. 전사를 통해 생성된 RNA는 완성품(단백질)의 구조가 담겨 있는 청사진과 같다. 그런데 세포는 RNA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RNA의 뉴클레오타이드를 수정할 수 있는데, RNA의 염기서열이 바뀌면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바뀌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바뀌면 단백질의 기능도 바뀌게 된다.] 남극 문어는 RNA의 아홉 군데를 편집하여 칼륨채널의 아미노산 서열을 바꾸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중의 한 가지(I321V: isoleucine to a valine)는 추위에 적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칼륨채널이 닫히는 속도를 두 배이상 느리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종의 적도생물, 2종의 온대생물, 2종의 남극생물을 대상으로 RNA 편집의 규모를 비교분석해 보았다. 분석 결과 기온이 낮은 곳에 서식하는 생물일수록 I321V 부분의 편집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의 의의는 RNA 편집이 생물의 환경적응을 돕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데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생물의 새로운 환경적응수단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단백질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새로운 분자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밴더빌트 메디컬센터의 로널드 에메슨 박사(분자신경생물학)는 논평했다. "이번 연구는 RNA 편집이 생물의 환경적응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규명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보다 심층적인 후속연구를 통해 RNA 편집이 생물의 다른 특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코네티컷 보건센터의 브렌턴 그래블리 박사(유전학)는 논평했다.
출처: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본출처: sciencema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