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약간의 충격을 가해서라도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싶었던 적은 없는가? 그렇다면 최근 6명의 간질환자들이 경험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들은 간질발작을 완화하기 위한 수술을 기다리던 중, 의료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특별한 실험에 지원하였다. 특별한 실험이란 뇌 안에 이식한 백금전극을 통해 약한 전류펄스를 가할 경우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의사들은 간질 수술을 하기 전에, 전극을 뇌에 이식하여 간질의 원인이 되는 부분을 찾아낸다).
"이번 연구는 간질수술의 일상적인 절차를 이용하여 놀라운 결과를 도출하였다"라고 에모리 대학교의 헬렌 메이버그 박사(신경과학)는 논평했다. 메이버그 박사는 이번 연구가 기억의 성립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고, 「뇌 심부자극술(DBS: deep brain stimulation)을 이용하여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 손상을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랩탑 컴퓨터를 지급하고 택시기사 게임을 하게 하였다. 환자들은 조이스틱을 이용하여 가상도시(virtual city)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소에서 환자를 태우고 내려줬는데, 연구자들은 - 환자가 모르는 사이에 - 특정 장소를 처음 지날 때마다 전기자극을 가했다. 그리고는 두 번째로 그 장소를 지날 때 보다 짧은 경로를 찾을 수 있는지를 관찰하였다(첨부그림 참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연구진이 내비피질(entorhinal cortex: 기억회로를 구성하는 부분 중 하나)을 자극하자, 환자는 특정 장소를 두 번째로 지날 때 보다 짧은 경로를 통해 보다 신속하게 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내비피질에 인접한 해마(hippocampus: 기억의 성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를 자극하자 일관된 결과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일부 환자의 경우 오히려 학습이 방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기억력을 연구하는 리처드 모리스 박사(신경과학)는 이번 연구결과를 매우 흥미롭다고 논평했다. "내비피질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 유입된 정보를 해마로 전달하는 중요한 경로이다. 따라서 내비피질을 자극할 경우 기억회로의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해마 안의 신경회로는 보다 복잡하여, 해마를 자극할 경우 일관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모리스 박사는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지휘한 UCLA의 이츠하크 프리드 박사(신경외과학)는 내비피질 자극 통해 알츠하이머병이나 기타 기억력 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의문사항이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이번 연구는 내비피질 자극이 공간학습(spatial learning)을 향상시켰음을 입증했지만, 사건에 관한 기억(memory for events, 예: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등에 관한 기억)도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입증하려면 별도의 실험을 실시해야 한다. 둘째로, 기억이 성립될 때뿐만이 아니라 기억을 떠올릴 때 내비피질을 자극해도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DBS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파킨슨병 환자와 기타 운동장애 환자들에게 유익한 효과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메이버그 박사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우울증과 기타 정신질환에 DBS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DBS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만일 도움이 될 경우) 그 메커니즘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예컨대, 캐나다 터론토 대학의 연구진은 2010년 6명의 초기 알츠하이머병에게 DBS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Ann Neurol. 2010 Oct;68(4):521-34), 그들은 기억력 회로의 또 다른 부분인 뇌궁(fornix)에 전기자극을 가했지만 상반된 결과를 얻었다. [즉, 한 환자는 기억력이 향상됐고, 두 환자는 기억력의 감퇴가 지연됐으며, 세 명의 환자는 유의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두 명의 환자의 경우 20~3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는 점이다.] 터론토 대학의 연구진은 약 50명의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올해 암에 임상시험을 개시할 예정이다.
터론토 대학의 연구를 지휘한 안드레아스 로자노 박사의 연구실에는 수십 명의 (외견상) 건강한 사람들이 메일을 보내와 기억력 향상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로자노 박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DBS를 이용한 기억력 향상방법이 효과와 안전성은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 현재 수술의 위험성을 상쇄할 만한 효능 및 장기적 안전성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기억력 향상을 원할 경우 수술보다는 한 잔의 커피에 만족하는 것이 좋다"라고 로자노 박사는 말했다.